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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소리

《눈치채길 기다리며》, 이요

2024.12.5-12.24 YPC SPACE

안소연 (미술비평가)

 

 

* 전시장에 들어서면, 검은 색 형상이 어른거리는 세 개의 직사각형이 보인다. 흰색 알루미늄 캔버스에 검은 색 명암을 드리운 이 세 개의 형상은, 각각 속도를 응축한 이미지로서 자리한다. <알레그로(Allegro)>(2024), <아지타토(Agitato)>(2024), <안단테(Andante)>(2024)로 이름 붙인 검은 형상들은, 이요가 제시한 회화다. 연주 방식을 뜻하는 음악 용어를 제목으로 가져와 “빠르게, 격하게, 느리게”의 속도를 제시한 그의 회화는,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 사이의 미세한 간섭과 교차를 다룬다. <알레그로>, <아지타토>, <안단테>는 알루미늄 캔버스 모서리에 작가가 특수 제작한 스피커를 대고 소리 파동이 캔버스 표면으로 옮겨가는 일련의 물리적 관계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소리 파동은 조율을 거쳐 특정 속도를 지닌 개별적 특성을 지니게 되고, 그것은 임의의 물질과 접촉해 물리적 에너지의 흔적을 생성한다. 흰 색 알루미늄 캔버스 위에 어른거리는 검은 색 형상들은, 바로 그 소리 파동과 임의의 물질이 접촉해서 생성된 에너지의 흔적이다. 

   이요는 시각적 이미지의 생성에 몰두해 있는데, 그것의 출발점은 소리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각적 요소로서 소리의 파동과 그것이 발생시키는 물리적 진동을 탐구한다. 그런 까닭에, 이요의 작업에서 나는 어떤 시차를 느낀다. 오래 전, 그는 회화적 콜라주에 집중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의 회화 주제는 “소리/소음”과 “침묵/무음”에 관한 것으로, 당시 그가 체험한 감각적 결핍과 과잉을 작업에 끌어들여 둘의 간섭과 마찰, 변환과 오류 등을 회화적 이미지 생성의 원리로 삼았다. 예컨대, 스피커나 나팔 같은 청각적 도구에서 검은 연기 같은 시각적 이미지가 뿜어져 나온다든가, 이질적인 사물과 인물이 극단적으로 병치된 콜라주 이미지에서 소음에 가까운 청각적 혼잡함을 표현하는 식이었다. 그러던 중에, 자신에게 “소리”라는 것이 파동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임을 인지하면서, 본격적으로 청각과 시각이 서로의 결핍을 보충하기라도 하듯이 이미지의 변환을 동반한다는 역설을 작업으로 가져왔다. 즉, 청각이 시각적 데이터로서 존재한다든가, 시각이 청각적 에너지에 의해 생성된다든가 하는, 감각의 전이 같은 것이다. 

   한동안 소리 파동에 대한 신체적 경험을 조건 삼아 즉흥적인 드로잉을 시도했던 때가 있었다. 청각적 경험을 수반한 자신의 신체를 마치 “검은 연기를 내뿜은 나팔”처럼 변환 시스템으로 특정하여, 그는 청각적 소리 파동을 즉흥적인 드로잉의 검은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결과물은 평면의 드로잉으로 남겨졌지만, 작가의 신체적 행위를 평면 위에 추상적인 밀도로 변환해 놓은 동력은 청각적 소리 파동이었다. 파동은 그의 몸에 물리적인 진동을 생성시켜, 그것을 감각한 신체가 수행적인 제스처의 흔적으로서 이미지를 생산한 셈이다. 

   그리고 <알레그로>, <아지타토>, <안단테> 등의 최근 작업으로 이어져, 그는 자신의 신체를 직접적인 행위의 매체로 매개하지 않고 “스피커”를 (자신의 회화 콜라주에서 꺼내 온 것처럼) 직접 만들어 일종의 새로운 시스템을 갖췄다. 우연적으로 생성된 검은 형상들은, 유령 같다. 그것은 제 스스로 어떤 육체를 구축한 형상도 아니며 어떤 것을 원형 삼아 출현한 것도 아니다. 상상되어진 것이며, 우연일 뿐이다. 이요는 그 불특정적인 이미지에 좀 더 간섭해 보기로 했다. 그것이 그가 스피커를 제작하게 된 이유일 테다.  

* <알레그로>, <아지타토>, <안단테>는 속도를 응축한 이미지다. 이요는 소리를 데이터로 구축하고 진동을 생성하기 위한 기술을 배우면서, 최근에는 스피커 제작과 아두이노를 활용한 센서 시스템 제작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알레그로>, <아지타토>, <안단테>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소리 파동이 스피커를 통해 생성됨으로써 그 진동을 일종의 캔버스에 가해진 물리적 간섭으로 두고 철가루의 움직임을 포착한 이미지다. 이번 작업에서는 무엇보다 속도를 하나의 변수 삼아 악보 같이 구축된 소리 데이터를 철가루의 움직임으로 변환시켜 이미지화 한 것이다. 이때, 이요는 이분법적인 청각과 시각의 변환을 제시하기 보다는, 이미 청각적 요소의 조건과 시각적 요소의 조건 안에 교차하고 있는 이질적인 감각의 매개체에 주목한다. 소리라는 파동이 악보처럼 시각적 구조로 명시되는 것과 회화라는 물질적인 형상이 청각적 개입에 의한 제스처를 수반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태도를 둘러싼 마찰>(2024)은, 전시 공간 내부에 건축적으로 형성된 네 개의 모서리를 활용한 작업이다. 흰 색 목재로 감싼 네 개의 수직적 기둥 형태의 이 작업은, 기능적으로는 스피커에 가깝다. 아두이노를 활용한 센서를 내부에 삽입하여, 관객의 신체가 특정 위치에 서게 되면 크고 작은 소음을 비선형적으로 발생시킨다. 이때, 관객의 움직임은 네 개의 수직적 기둥 사이에 자리잡은 황예간의 회화가 조율하다가, 어느 순간 소리와 진동이 매개한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이요와 황예간의 2인전 《눈치채길 기다리며》(2024)는 다층적인 맥락에서 간섭과 마찰을 다룬다. 나아가 그것이 발생시키는 소외와 단절을 사유하며, 지각과 인식의 차원에서 그것을 가시화 할 명분과 방법을 모색한다. 이요는, 황예간의 회화를 경유함으로써 시각적 몰입의 순간에 우연히 발생하는 청각적 변환을 제시했다. 회화 표면에 편집적으로 배치된 이미지들을 탐색하며 공간을 가로지르는 관객의 신체는, 어떤 시점에 머물러 시각적 정보를 알아차릴 준비를 갖춘다. 그 집중의 순간에, 이요는 소리의 개입을 시도했다. 

   그림 앞에 선 신체를 감지한 센서가 흰 색 기둥 안에서 소음을 발생시킨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것 같은 이 백색 기둥의 정체는, 숨은 소리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일어난 소리의 마찰은 시각적 감각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소리의 정체를 향해 응시하게 한다. 이 간섭은 순간적인 감각의 혼란을 야기했고, 이내 추상적인 소리에 집중할 감각을 조율하게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황예간의 회화와 이요의 소리 오브제는 완전하게 분리시킬 수 없는 감각의 교차점을 시사한다. 백색 무음의 조건 속에서 시각적 경험의 몰입을 기대한 회화 이미지는, 사실상 그 안팎에서 이미 현실의 다층적인 소음을 암시하고 있다. 게다가 본다는 것의 행위는, 단지 보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환경, 즉 일련의 공감각적 삼차원의 환경에 의해 완수된다. 황예간의 회화는 그것을 촉구함과 동시에, 이요가 그것을 실행해내고 만다. 소리의 간섭, 이 느닷없는 사건은 시각적 안정 상태를 해체함과 동시에 다시 극단적인 긴장으로 이끈다. 저 회화의 이면과 이 소리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감각은 끊임없이 교차한다. 

   황예간의 회화와 이요의 철가루 회화 사이에 의자처럼 놓인 <인식의 태도>(2024)는 그러한 중간적 감각의 변환을 환기시킨다. 그림 앞에 서성이는 몸, 의자처럼 생긴 사물 앞에서 망설이는 몸, 그 몸 안에서 미세하게 작동하는 시각과 촉각과 청각을 감지한 센서는 “숨은 소리”를 내포한 시각적 육면체를 띄고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긴 목재 오브제는, 그 내부에서 외부의 이미지(몸)를 감지하여 함성을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시각적이면서 촉각적이고 청각적이다. 이요의 작업은, 감각의 분할을 미세하게 조정함으로써 그것의 변환을 매개하는 물질과 형상을 다룬다. 

©2025 EE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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